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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인도 중국 미국에 이은 세계 4위 인구 대국이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와 미국처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기에 ‘세계 3대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한다.
다만 민주주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45년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오랜 군부 독재를 거쳤고 2004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첫 직선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역시 군인 출신이었다. 이에 2014년 첫 민선 대통령 조코 위도도(조코위)가 취임했을 때 2억8000만 국민의 기대가 엄청났다.
사람들은 그를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라 했다. 당시 세계 최고 권력자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1961년생, 흙수저 성공담, 그때만 해도 소탈했던 이미지 등이 흡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한때 인도네시아에 살았다는 이력까지 더해졌다.
10년이 흐른 지금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조코위 대통령이 14일 치러질 대선 1차 투표를 장남 기브란에게 권력을 물려줄 도구 정도로 여기는 탓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집권 투쟁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미는 사람은 2014년, 2019년 대선에서 모두 본인과 대결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게린드라당 대선 후보. 프라보워의 부통령 후보가 기브란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과거 프라보워와 대결할 때 “군부 독재로 회귀하고 싶으냐”고 그를 공격했다. 프라보워는 군인 출신이고 전 장인 또한 군부 출신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다. ‘독재’ 운운할 땐 언제고 3선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자신의 3연임이 어려워지자 이제 정적(政敵)을 후임자 겸 아들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삼으려 한다. 집권당의 주요 정치인은 프라보워만큼 기브란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기브란이 부통령 후보에 오른 과정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부친의 정치적 고향인 솔로 시장으로 재직 중인 37세의 기브란은 당초 ‘정·부통령 후보의 출마 자격은 40세 이상’이라는 선거법으로 출마가 불가능했다. 그러자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연령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기상천외한 헌법 소원을 인용해 위헌 판결을 내리고 출마 장애물도 없애줬다.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조코위 대통령의 매제 겸 기브란의 고모부인 안와르 우스만이다. 우스만은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어기고 이 인용 결정에도 참여했다. 각계의 비판이 들끓자 헌법재판소장에서 물러났다.
많은 동남아 지도자는 세습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모두 부친이 총리 혹은 대통령이었다. 또한 리 총리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는 각각 자신의 아들과 딸을 차기 총리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조차 우선은 친분이 두터운 정치인에게 잠시 총리직을 맡겨 조금이라도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늉은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세습을 위한 최소한의 구색은 갖추려는 것이다.
조코위 대통령에겐 그 시늉조차 번거로운 듯하다. 아들의 출마에 필요한 고작 3년을 못 기다려 사실상 헌법을 뜯어고쳤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고 아들의 선거 운동에도 열심이다. 세습을 위한 ‘징검다리용 후임자’로 정적을 택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국민을, 헌법을, 민주주의를 우습게 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취임 직후 한국을 찾아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 동시 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인도네시아를 한국처럼 만들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성장은 이뤘을지 모르나 그가 갓 싹을 틔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은 아들의 부통령 등극과 무관하게 남을 것이다. 그가 인도네시아의 첫 민선 대통령이 아니라 ‘민선 대통령이면서 세습을 시도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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